나는 그날도 걷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걷다보면 문장처럼 낯선 구절이 튀어나온다. 남가좌동, 사람들은 그곳을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연남, 서교, 연희 너머 어딘가쯤이라고 얼버무린다. 거기, ‘중화루’라는 작고 오래된 간판이 있다. 페인트는 벗겨지고, 상호는 흐릿해서 가까이 가야 읽힌다. 그러나 그 가게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그 불 앞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서 있었다. 주문을 넣자 주방에서는 웍이 부딪히는 소리, 국자가 벽을 긁는 소리, 불길이 튀어 오르는 소리들이 이어졌다. 조리라는 노동, 그 노쇠한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시간의 파장이 있었다. 먼저 나온 것은 탕수육이었다. 맑았다. 요즘 흔히 나오는 끈적한 소스와는 달랐다. 튀김은 바삭함과 부드러움의 경계에서 머뭇거렸다. 그런 절제, 그런 한 걸음 물러난 고집 같은 맛이 한 조각 탕수육에도 스며 있었다. 소스는 밍밍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야채와 함께 씹었을 때, 단맛과 신맛이 가늘게 올라왔다. 그건 입을 놀라게 하려는 맛이 아니라, 입 안에서 가만히 말을 거는 맛이었다. 그리고 볶음밥. 그것은 문장이었다. 불 앞에서 눌러가며 볶아낸 고슬고슬한 입자, 거기에 스민 파기름의 향기, 부드럽게 올려진 계란지단, 모든 요소가 단어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숟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기억에 남을 구절이구나. 곁들여 나온 짜장소스는 단맛과 짠맛이 조심스럽게 섞여 있었고, 그 자체로도 조심스러운 수미종이었다. 맥주 한 병을 곁들였고, 천천히 한 모금씩 마셨다. 그 집은 서두르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고, 그 집의 음식은 다만 시간을 품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군만두도 직접 만든다 했다. 튀기지 않고 굽는다. 다음엔 그걸 먹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노부부 두 분의 연세가 내 발걸음을 자꾸 앞당긴다. 중화루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조용한 접시 하나하나에, 서울의 사라져가는 맛의 문장이, 끊어진 것처럼 남아 있었다.
중화루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8길 26 현대아트빌
석슐랭 @kims8292
아..이제서야 이 리뷰를 읽는데, 저도 첫 방문한 날의 그 생생함이 다시 재현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