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은 항상 흐르고 있었다. 사람과 바람, 그리고 허기를 머금은 시간들이.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 중림장으로 갔다. 몇 번을 스쳐 지나간 골목, 마치 어제의 술처럼 뒷골에 남아 있던 기억. 중림장의 입구는 작고 낡았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순간, 서울이라는 도시가 오래된 냄비 속에서 김을 뿜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김치와 깍두기. 서울의 그것. 익음과 숙성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맛. 좋아하진 않지만, 설렁탕엔 이런 게 어울린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했다. 인정이란 건, 결국 입맛의 타협이다. 설렁탕을 시켰다. 특으로. 밥은 따로 나왔다. 소면도 한가득. 그래서 밥은 천천히, 국물은 먼저, 고기는 그다음. 그런 순서로 서울의 시간을 씹어 먹었다. 국물은 꾸릿했다. 아니다. 꼬릿이 아니라 꾸릿. 전통과 피지 않은 기름 사이의 오래된 균형. 혀에 닿는 순간, 이건 설명이 아니라 감각이어야 했다. 소금, 후추, 파를 넣자 비로소 그 꾸릿함은 설명 가능해졌다. 그것은 서울이었다. 육향의 시간, 정리되지 않은 기억, 그러나 익숙한. 고기들은 입안에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말을 걸었다. 소머리, 우설, 양지. 질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연하지도 않았다. 딱 서울 사람들의 거리감처럼, 적당히. 그리고 냄새. 가게에 밴 냄새. 벽과 천장과 의자에 밴 그것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내내 따라다니는 냄새. 지하철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국물의 그림자. 백화점 조명 아래서도 사라지지 않는 국물의 기억.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싫지 않다는 것을. 도시에서 뭔가 오래된 걸 먹는다는 건, 그 기억까지 가져가는 일이라는 것을. 서울은 그렇게, 중림장의 국물로 오늘도 조금 더 늙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 늙음을 한 그릇 떠먹었다.
중림장 설렁탕
서울 중구 청파로 459-1
Luscious.K @marious
캬~~~아 중림장 러버로서 이보다 멋진 중림장 리뷰가 있을까요? ㅎ 특히 “딱 서울 사람들의 거리감처럼, 적당히” 이 부분은 제가 찡하네요. 서울이 딱 그런 곳.
쁜지 @punzi80
@marious 혼밥 먹으러 노포를 자주 다니다 보니 그 적당한 거리감이 저는 좋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