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후계 곰탕의 끝을 보게 해주는 한 그릇 부산 해운대에서 이름을 알린 거대곰탕이 강남역에 문을 열었습니다. 사골을 깊게 우려내는 집으로 유명한 만큼 기대치가 자연스레 올라갑니다. 곰탕·설렁탕 계보를 이야기할 때 지역성과 스타일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집은 경상도식 농후계 곰탕을 현대적으로 밀어붙인 인상입니다. 나주·하동관식처럼 고기 우린 맑은 국물과는 결이 다르고, 서울의 오래된 설렁탕처럼 반투명 계열과도 또 다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아주 진하고도 부드러운’ 신식 농후계 곰탕의 대표격으로 보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강남역 매장은 신분당선 쪽에서 접근성이 좋습니다. 넓고 정돈된 공간에 식기와 집기도 수준급이라 첫인상이 좋습니다. 다만 테이블 간격에 비해 2인 테이블판이 작은 편이라 상차림이 많은 구성에서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직원 수가 홀 컨트롤에 비해 적고 호출벨이 없어 응대 타이밍이 비는 순간이 있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식사만으로도 단가가 높아지는 집이라 디테일한 운영 보강이 필요해 보입니다. 수육은 ‘세련됨’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됩니다. 얇고 길게 썬 부위가 보기 좋게 겹쳐 나오고, 잡내 없이 육향이 분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파김치의 파향과 씹감은 강하지 않게 정돈되어 고기 맛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채지는 매운기와 무의 아린맛을 최대한 덜어내 산뜻함만 남겼습니다. 상추·쌈장·명란·마늘·고추 등 곁들이는 원물들도 간과 질감이 과하지 않아 전체가 ‘고기 중심’으로 정렬됩니다. 여러 재료를 한 번에 올려도 고기 맛이 선명하게 관통하는 구성입니다. 지방의 유명 노포 수육이 주는 호방함보다는, 청담·삼청 일대의 퓨전 파인다이닝이 연상되는 미감과 밸런스입니다. 시그니처인 ‘농후하고 더 진한 뽀얀곰탕’은 이름 그대로입니다. 표면에 기름막이 고요히 잡혀 나올 정도로 진하지만 입안에 눅진하게 들러붙지는 않습니다. 첫 숟가락에서 고소함이 훅 올라오고, 뒤따라오는 감칠이 길게 깔립니다. 질감은 점성감이 분명한데 목 넘김은 의외로 매끈합니다. 기본 간이 살짝 배어 있어 소금 두 꼬집과 흑·백후추를 가볍게 얹으면 풍미가 한 단계 열립니다. 파를 듬뿍 더해도 국물의 농후함이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고명으로 오른 수육은 보들하지만 국물 임팩트가 워낙 강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해집니다. 양은 하동관식 배분에 가깝게 느껴졌고, 가격대를 감안하면 살짝 아쉬움이 남습니다. 면사리는 양이 넉넉하게 나옵니다. 국수집 한 그릇에 준하는 중면이 뜨끈한 채로 제공되어 사실상 ‘국물 리필+식사 추가’에 가까운 만족감을 줍니다. 두 분이 함께 드신다면 면사리는 한 가지만 주문해 나눠 드시는 편이 적절합니다. 이 집의 매력은 ‘과잉의 미학과 절제의 미학’을 동시에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국물은 끝을 볼 만큼 진하지만, 반찬과 곁들임, 수육의 간은 과하지 않아 중심을 교란하지 않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출발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번역해 강남에 옮겨놓은 결과물로 읽힙니다. 농후계 곰탕의 끝맛을 보고 싶으신 분, 수육의 결을 깔끔하게 즐기고 싶은 분께 추천드립니다.
거대곰탕
서울 서초구 사임당로 157 지하1층
비교적온순 @dulana
이야~ 사진만 봐도 진득함이... 한 번 가봐야겠네요.
쁜지 @punzi80
@dulana 분명히 진한데 또 그렇다고 입에 막 기름이 쩍쩍 붙지는 않아서 신기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