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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지
4.0
9일

시청 쪽에서 덕수궁 돌담길로 넘어가는 길 초입에, 와플 모양이 딱 보이더군요. 걷다가 “아 여기였지” 하고 멈추게 되는 자리입니다. 줄이 길진 않아도, 한번씩 손에 들고 가는 분들이 계속 보입니다. 상호가 리에제 와플이라 처음엔 살짝 갸웃했습니다. 도시 이름으로는 리에주가 익숙하니까요. 외국어 표기는 발음 따라 변한다지만, 리에주가 리에제로 굳는 과정은 아직도 신기합니다. 그래도 한 번 굳으면 브랜드는 브랜드죠. 벨기에 와플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면 브뤼셀식과 리에주식이 떠오릅니다. 브뤼셀식은 직사각형에 토핑 얹어 먹는 형태가 먼저 대중화됐고요. 리에주식은 반죽 안에 버터 풍미랑 설탕 펄이 들어가서, 굽는 동안 안쪽에서 카라멜이 만들어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겉모양도 동그랗거나 울퉁불퉁하게 나오고요. 저는 리에주식에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학생 때 광주에서 생지랑 기계까지 들여와서 해보겠다고 덤볐다가, 보기 좋게 망한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는 “가끔” 정도로만 먹게 됐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가끔’이 또 필요합니다. 여긴 좌석이 아예 없는 테이크아웃 구조입니다. 그래서 가격을 볼 때 기준이 조금 달라집니다. 와플 값 자체는 시청·정동 라인 감안하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다만 음료는 확실히 비싸게 느껴집니다. 앉을 자리도 없는데 음료 가격이 카페급이면, 손이 한 번 더 망설여지죠. 저는 메이플 시럽 올린 메뉴로 갔습니다. 나온 모양은 깔끔했고, 겉면 카라멜화도 보기 좋게 잡혀 있더군요. 이 집은 일단 굽는 온도랑 타이밍을 꽤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막상 한 입 먹어보면 그 차이가 바로 납니다. 리에주식 와플은 관리가 은근히 티가 납니다. 기계를 매일 빡세게 씻지 않으면, 벌집처럼 튀어나온 부분에 거뭇한 잔흔이 남거나 쇠 냄새가 올라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여기서는 그런 불쾌한 기운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 손이 많이 가는 걸 감안하고도 계속 닦는구나” 싶은 쪽입니다. 식감은 겉바속쫀으로 단순하게 정리되긴 하지만, 디테일이 있습니다. 겉은 바삭하게 깨지면서도 딱딱하진 않고요. 안쪽은 설탕 펄이 녹아 만든 단단한 점들이 씹히면서 쫀득하게 이어집니다. 메이플 시럽이 들어가도, 와플 자체의 단맛이 중심을 잡는 타입입니다. 카라멜화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버터 함량에서 오는 풍미는 살짝 아쉬운 쪽이었어요. 버터가 조금만 더 도드라지면 단맛이 더 둥글게 퍼지는데, 여긴 그 부분이 약간 가볍습니다. 대신 느끼함이 덜해서, 산책 중에 들고 먹기엔 오히려 편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고급 제과점에서 포장으로 파는 리에주식”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제품들은 모양은 반듯해도, 굽는 컨디션이 죽어 있거나 식으면서 식감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건 바로 구워 나온 힘이 있습니다. 손에 들고 걸으면서 먹어도 끝까지 식감이 크게 망가지지 않더군요. 덕수궁 돌담길 쪽은 걷다 보면 달달한 게 당기는 구간이 생깁니다. 밥 먹고 난 뒤 입가심이 필요한 타이밍도 그렇고요. 그럴 때 리에제 와플은 딱 그 역할을 합니다. 다만 음료까지 세트로 붙여 먹겠다는 마음은, 가격표를 보는 순간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도 시청 근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빠르게 만족도를 채울 디저트를 찾는다면 선택지로 충분합니다. 특히 리에주식 특유의 설탕 펄 카라멜을 좋아하시는 분이면 더 잘 맞을 거예요. 저는 다음에도 근처 지나가면, 또 한 번쯤은 손이 갈 것 같습니다.

리에제 와플

서울 중구 덕수궁길 5 1층

하늘호수속으로

와플을 그닥 안즐기는데 쁜지님 와플에 관한 논문같은 글 읽으니 매우 먹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