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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루트

추천해요

5개월

오늘 휴가를 내고 푹 잤다. 일어나니 오후 한시, 아니 어쩌면 오후 두시. 잘 모르겠다. 이 곳은 출퇴근 길에 항상 보이는 빵집이다. 솔직히 축구선수 엘샤라위가 떠오르는 것 말고는 전혀 끌리지 않는, 어쩌면 촌스러움이 묻어있는 그런 동네빵집이다. 집 근처에는 나폴레옹제과점이 있고, 직장 인근 백화점에는 베이커리가 즐비하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빵을 판매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렇게 느꼈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빵에 대한 갈증은 강하지 않았고, 원래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런가? 아무튼 평소에 눈에 밟히지 않던 그런 곳이다. 퇴근길에 다시 마주한 빵집. 가게 안 매대로 눈길이 향했고, 못생긴 옛날 빵들이 보인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오늘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다 가게로 들어섰다. 불현듯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일까. 어린시절 할아버지 댁 거실에는 빵바구니가 있었는데 선물받은 옛날과자와 빵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못생기고 투박한 빵들을 나와 형은 배가 아주 고프지 않고는 손대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다가와 할아버지는 빵을 주욱 찢어서 건네주시곤 했고, 나와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맛이 없다고, 먹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평생 건강하실 것 같던 할아버지도 시간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셨다. 나 졸업할 즈음인가 그때 즈음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셨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다음 해인가. 가족 모임으로 다녀온 할아버지 집은 어색한 온기가 감돌았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듯 친절히 반겨주셨다. 그의 부재 외 바뀐 것은 없는 줄 알았는데, 빵이라도 집어 먹으러 거실로 갔다가 텅빈 빵바구니를 보고 멈칫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애초에 선물 받은 빵따위는 없었단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할아버지는 새벽마다 빵을 사러 시장에 가셨다고 한다. 오랜만에 손주들이 온다고,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동네빵집에서 한참 기다려서 갓 구워나온 빵을 사오셨다고 한다. 그렇게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호사는 당연하지 않은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었는데, 멍청한 나는 그걸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됐다. “깨찰빵 하나요.”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못생긴 깨찰빵을 주문하고 비닐을 지익 뜯어 한입 베어물었다. 고소하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그땐 몰랐을까. 한입 한입 천천히 음미했다. 우물우물 거릴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터져나와 목이 메인다. 손자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고, 대학에 합격했다고, 군대를 제대했다고 좋아하시던 그의 모습이 선연하게 피어오르다 이내 흐릿한 잔상이 되어 사라진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대학은 졸업했는데. 학사모 쓰고 사진도 찍었고 취업도 해버렸는데. 진급도 했고 돈도 많이 버는데. 동네빵집에서 빵 따위 제가 실컷 사드릴 수 있는데, 어디 계신가요.

엘샤다이 과자점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18길 3 크리스탈빌

푸리닝

ㅠㅠ… 눈물의 깨찰빵 베이커리 리뷰라 신나서 읽다가…쥬륵

머큐리

이 밤에 이 글을 클릭하다니 제 실수인 것 같아요.너무하십니다 백돼지님. 할머니가 보고싶네요.깨찰빵도 먹고싶구요. 담담하고 멋진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