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 잘 사주는 예쁜 오빠가 공덕동에 새롭게 맛있는 집이 오픈했다길래 같이 찾아갔다. '대물상회' 라는 다소간 옛스러운 느낌의 이름에 비해 화려한 집이다. 2. (잠시 딴소리) 항상 일식과 한식에 대해 고민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음식' 의 역사는 도외시 되어 왔는데.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백이 숙제처럼 검박하게 사는 모습을 이상적으로 삼았고,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굉장히 아둔하고 저열화된 인간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소고기 맛을 보려다가 죽은 이도 있었고, 잡채를 바쳐 관직을 받은 이도 있었고, 설하멱을 그린 풍경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전반적으로~ 먹는 이야기 꺼내놓기를 즐기지 않았고, 따라서 허균과 같은 케이스는 굉장히 이례적인 (..) 사례라 할 수 있겠다. 3.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선에서 음식손질에 대해 왈가왈부 시끄럽게 할 수 있는 부분은 딱 하나, 봉제사접빈객이다. 타인과 조상에 대한 공양. 대신 송구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킨 사치스럽지 않은 음식. 최소한의 재료를 써서, 최대한의 음식을 얻고자 했고, 산채를 먹고, 풀로 배가 차지 않으니 밥을 많이 먹었고. 뭐 대충 그렇게 된 이야기다. 반대로 옆나라 일본은 어땠느냐면.. 고기는 못먹되 나머지는 신나게 먹어치웠다. 나는 조선시대 중반의 유명한 설렁탕집 뭐 이런 이야기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일본은 에도시대 이전의 유명한 요릿집, 요리장들의 이야기가 역사책에도 시원시원하게 등장한다. 무신들의 나라여서 항상 죽음을 염두해야 했기 때문일까. 한번 사는 인생, '아름답게' 사는 것이 목표라서 그런지. 죽음도, 식욕도, 성욕도 모두활발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음식은 점점 더 정교한 작품이 되었다. 4. 위와 같은 측면에서 보자면 '대물상회' 는 어김없이 일식이다. 톤다운된 색을 썼지만 눈여겨보면 굉장히 화려한 장소인데다, 귀하다는 거북이 등껍질을 넣은 농이 있고. 가게 바깥에는 백금을 썼다는 생선장식이 있고. 주인장께서는 이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여기 있는 술이 얼마나 귀한지 거듭 강조하신다. 귀한 곳에 와서 귀한 대접 받으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 미식의 궤를 꿰뚫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 미식을 하고싶으신 분들이면 찾아서 드셔보시라. (사실 저는 미식 파가 아님...) 5. 한편 음식값으로는 1인 45000원을 받고 있는데, 들어오는 생선 (주인장은 그 배에서 잡은 생선을 모두 사들이신다고 한다) 의 종류에 따라 60000원 까지도 오른다. 사실 그 먼 곳에서 낚시로 잡아올린 커다란 생선을 서울까지 신선하게 공수하여, 눈앞에서 손질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가격대가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모든 저녁장사 음식점이 그렇듯, 모자란 부분을 술값으로 충당하려는 생각이 있으신데 그걸 굉장히 강력하게 어필하시는 타입. 주류 라인업도 다양하고 (위스키, 버번, 사케, 소주, 맥주) 개중에 궁금한 술이 한두어개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음식점' 이라기보다 술 마시는 사람들이 겸사겸사 좋은 안주 먹기 위해 가는 '술집' 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6. 음식은 회 위주로 스타트. 일찍가면 일찍 갈수록 많은 접시를 누릴 수 있으니 시간 맞춰 가심이 좋습니다. 광어와 민어를 먹었고, 카르토치오로 나온 감성돔과 야채스틱 소스가 맛있었다. 생선은 커다란 놈이 더 맛있다, 가 정설인데 이곳 생선들은 8-10kg 정도를 왔다갔다 하는것 같았다. 산지 아니고서 쉬이 보기 어려운 크기다. 이 날 광어는 8키로 였고, 두툼하게 썰어주셔서 입안가득 씹는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정도 사이즈는 전으로 부쳐먹어도 맛있음) 이후에 나온 민어 쪽은 살이 이빨을 촥촥 휘감는듯 촉감이 아주 인상깊었다. 특히 부레의 녹진한 맛은 후에 나온 오토로를 누르고도 남을만 ㅎㅎ 낙지초무침도 혼자 새콤달콤하여 입맛을 돋아줬다. 마지막에 나온 민어찜밥 아주 맛있었고. 위가 작은 편이 아닌데도 굉장히 포만한 상태였음. 술은 나베시마 준마이를 먹었는데. 향긋하고 달달, 깔끔하였다. 우라가스미나 텐신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 여리여리 하다는 생각도 (..) 사실 관심있는 것은 생주나, 아란 쪽이었는데 밥 사주시는 예쁜 오빠가 회에는 사케가 잘 어울릴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토를 달 수 없었다ㅎ 7. 소리가 공간 안에 울리는 편이라, 조용한 분위기는 못된다. 두툼한 나무 테이블 두개를 쓰는데 20석 정도 되고, 자연스럽게 다른팀과 합석하게 된다. 예약을 한번 무를 경우 다시는 이 집에 올 수 없으며, 어린이 손님은 안 받음. 이미 금주까지는 예약이 풀로 찼음. 8. 남에게 접대받아가면 좋은 곳이지만 내가 가기에는 가격대도 음식도 약간은 애매. 특히 거침없이 25만원-60만원 술을 추천해주시는 사장님은 지갑 얇은 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다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술을 마시러 가는 꾼들에게는 한번쯤 경험해볼만한 곳 (해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될 것이다. 2인 기준 2-30 예상. 9. 들어서는 순간부터 뜬금없이 강릉 기사문이 떠올랐고 (..) 가고싶다 가고싶어 내 사랑 기사문... 여러분 강릉에 가면 기사문을 갑시다 (뜻밖의 영업)
대물상회
서울 마포구 새창로6길 29
ɴᴏᴏʜɪᴢ @noohiz_k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입니다 😍
꿀동 @zesize
@noohiz_k 술 잘드시는 분들은 재미있으실 것입니다 :)
드람뷔 @thskxk
글 잘 쓰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