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태화장 #유슬짜장 * 한줄평 : 성시경의 먹을텐데, 대전 태화장과 유슬짜장 • 성시경의 먹을텐데 방송 이후 쏟아지는 극찬 맛집 • 3대 70년 노포 화상의 위엄, 야채 카빙과 유슬짜장 • 그러나 내게는 군만두 말고는 칭찬 포인트가 없는.. 1. 수요미식회와 삼대천왕의 뒤를 이어 줄서는 식당이나 또간집 등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보기에 가장 파급력이 큰 채널은 가수 출신 성시경의 <먹을텐데>이다. 본인이 알고 있는 맛집에 방문하여 담담하게 음식에 얽힌 추억과 맛있게 먹는 비법을 풀어내는 컨텐츠로 매회 1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2. 이 채널에 대한민국에서 <음식>하면 단연코 최고의 브랜드 밸류를 가진 백종원 선생님께서 게스트로 출연한 곳이 있으니 바로 1954년 개업하여 3대 70여년 업력의 <태화장>이다. 3. 컨텐츠로 소개된 모든 음식이 구미를 당겼지만, 특히나 내 눈을 반짝이게 만든 것은 이제는 만나보기 쉽지 않은 중식당 고급 요리 접시 한켠에 나왔던 <야채 카빙>과 이제는 사라져버린 <유슬짜장>이었다. 4. 지금이야 배달음식으로 지위가 격하되었지만, 본디 <청요리 ; 임오군란 당시 중국 청 시절 들어온 음식>로 불리던 중국음식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화려한 외식을 상징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만나기 힘든 식재료와 조리 방식으로 한식과는 또 다른 화려함을 선보였는데 이십여 전까지만 해도 고급 중식당 비싼 요리 접시 한켠에 무우와 오이 등의 야채로 조각된 꽃과 대나무 등이 있었던 것이 바로 그 흔적이다. 5. 야채 카빙의 화려함은 중식당 칼판의 실력과 요리에 대한 상상력을 가늠하는 척도였지만,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여서 그런지 만나기가 요원해졌다. 그런데 분명 성시경 태화장편에서는 탕수육 접시 한켠에 무를 카빙한 분홍 연꽃이 보여 묵묵히 내 갈길 걸어가는 노포의 정체성을 보여주었기에 더없이 반가웠더랬다. 6. 재료를 길게 썰어 춘장에 볶아낸 <유슬짜장> 역시 이제는 사라져버린 화려한 중식당의 메뉴이다. 짜장이 대중화된 배경에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노동집약적 산업 체제에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빨리 빨리> 문화가 숨어 있다. 7. 전화 한 통이면 28그릇이나 들어간다는 철가방에 담아 배달된 짜장면을 별도 반찬 없이 비벼 먹을 수 있었으니 당시 모든 것이 급했던 시대에 가장 부합했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어찌보면 주방에서 역시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조리 방식으로 레서피가 변화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8. 이런 과정을 거치며 짜장은 오래 끓여내도 모양의 변형이 적은 형태로 재료를 관리하기 시작하며 <유슬짜장>의 자취가 점차 사라져버렸다. 9. 내게 있어 태화장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중식 아이템 2가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장소가 되어버린지라 마침 대전 출장을 겸하여 큰 기대를 안고 방문하여 군만두, 탕수육, 유슬짜장, 난자완스밥 등을 주문하였다. 10. 중식의 대명사는 짜장면이지만, 실제 임오군란 당시 산동화교가 가져온 대표 음식은 만두이다. 여전히 오랜 업력을 자랑하고 있는 화상 노포는 만두를 직접 빚어내는데, 태화장의 만두 역시 일품이었다. 다소 두텁지만 발효 반죽과 만두소의 어우러짐이 노포 화상 군만두의 정석이었다. 11. 그러나 군만두를 먹으며 한껏 부풀어오른 기대감을 짜게 식게 한 것은 미처 잡아내지 못한 탕수육 돼지고기의 잡내와 길게 잘라내 불향을 입혀 볶아내지 않고 길게 썬 채소를 토핑으로 내준 유슬짜장의 방식이다. 여기에 성시경 먹을텐데 소개 이후 손님이 많아져서인지 야채 카빙 대신 올라온 파슬리까지.. instagram : moya95
태화장
대전 동구 중앙로203번길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