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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찬
5.0
7시간

#동대문생선구이골목 #어머니국시방 #감자칼제비 * 한줄평 : 동대문, 밀가루가 버틴 자리 1. 동대문 평화시장이 문을 연 것은 1961년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십 년도 되지 않았던 시절, 피란민과 월남민들이 청계천변에 천막을 치고 헌옷을 팔던 노점은 어느새 4층짜리 건물로 올라섰다. 3, 4층에는 봉제 공장이 빼곡히 들어섰고, 1, 2층에서는 완성된 옷이 쉴 새 없이 팔려나갔다. 2. 평화시장이 자리를 잡자 동화시장, 통일시장, 흥인시장이 뒤따랐고, 동대문 일대가 대한민국 섬유 산업의 심장부가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장이 뛰려면 피가 돌아야 했다. 원단을 나르던 지게꾼들, 재봉틀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밤을 새우던 시다들, 새벽 네 시 도매 시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소매상들. 이들의 끼니는 거창할 필요가 없었다. 싸고, 뜨겁고, 배가 차야 했다. 밀가루 반죽을 물에 풀어 손으로 뚝뚝 떼어 넣는 수제비는 바로 그 조건을 가장 충실하게 충족시키는 음식이었다. 3. 1986년,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 초입에 [어머니 국시방]이 문을 열었다. 서울올림픽을 2년 앞두고 나라 전체가 들썩이던 무렵이었다. 수제비와 칼국수, 몇 가지 밀가루 음식이 전부인 작은 가게는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간판 속 할머니 얼굴이 조금씩 빛바래는 동안에도, 동대문 상가의 간판들은 수없이 바뀌었다. 4. 내가 주문한 음식은 감자수제비였다. 손으로 떼어낸 반죽은 두껍고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든든함이 먼저고 모양새는 나중인 음식, 육체노동자의 한 끼를 오래 책임져온 집의 수제비는 애초에 그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5. 수제비가 언제부터 한국인의 밥상에 올랐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에는 [운두병]이라 하여 양반가에서 먹던 음식이었다. 이 흐름은 한국전쟁 이후 바뀐다. 미국의 원조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밀가루는 더 이상 귀한 재료가 아니게 되었다. 값싸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던 시기, 수제비는 빠르게 서민들의 한 끼로 자리잡았다. 6. 귀하던 것이 흔해지면 격이 내려간다. 수제비는 그렇게 내려왔고, 동대문의 지게꾼과 시다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 국시방이 40년을 버텨온 이유는 음식이 특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 동네에 그 음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필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가게는 닫히지 않는다. 동대문 상가는 지금도 새벽에 불을 켠다.

어머니 국시방

서울 종로구 종로40길 18 1층

맛집개척자

수제비가 운두병이란 음식인지는 몰랐네요. 또하나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