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열기

#공부가주 #자약 #고량주 * 한줄평 : 공자 가라사되, 변해야 오래 갈 수 있나니.. 1.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가운데 하나인 『주역』에는 "막다른 곳에 이르면 변해야 하고, 변해야 길이 열리며,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라는 글귀가 있다. 본디 『주역』은 세상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책이었지만,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삶의 질서를 만든 공자는 이 책을 깊이 탐독했고, 그의 해석을 거치며 『주역』은 철학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2. 무릇 전통이란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시대를 건너가는 개념으로 변화를 거부한 전통은 유물이 되었고, 변화를 품은 전통은 문화가 되었다. 3.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에서 태어난 공부가주가 그러했다. 전통적 백주의 무거운 이미지를 내려놓고, 진중한 갈색 항아리병의 외관을 시류에 맞춰 젊게 리뉴얼했다. 편종을 형상화한 병에 민트와 오렌지, 화이트 같은 트렌디한 색을 입혀 젊은 세대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며, 공자라는 이름조차 시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변화를 품고 공부가주가 젊은 세대를 겨냥해 내놓은 제품이 바로 자약(子约) 시리즈다. 4. 이름부터 흥미롭다. 자약은 중국어로 읽으면 『논어』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자왈(子曰)과 같은 발음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을 슬쩍 비틀어 '그대와의 약속'이라는 의미를 담아냈다. 5. 병의 형상 역시 의미심장하다. 자약의 병은 편종(編鐘)을 본떠 만들었다. 편종은 궁중 제례와 아악 연주에 사용되던 청동 악기로, 공자가 평생 이상으로 삼았던 예악(禮樂)의 상징이다. 전통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전통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셈이다. 6. 흥미로운 것은 자약이 술의 맛보다 먼저 색으로 소비자에게 말을 건넨다는 점이다. 자약 시리즈는 민트, 오렌지, 화이트, 블랙으로 이어지는 컬러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민트는 가장 대중적인 입문형 제품이다. 비교적 부담 없는 도수와 부드러운 향을 앞세워 젊은 소비자들이 백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오렌지는 향과 개성을 조금 더 강조한 제품이고, 화이트는 보다 정제된 스타일의 프리미엄 라인으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그리고 블랙은 자약 시리즈의 정점에 있는 65도의 프리미엄 초고도주이다. 7. 공자의 술도가가 어쩌다 이런 변신을 꾀하게 되었는지는 시야를 중국 바이주 시장 전체로 넓혀야 비로소 보인다. 지금 중국 바이주 산업은 깊은 침체의 한복판에 있다. 생산량은 8년째 감소하고 있고, 상장 주류기업들의 실적은 10여 년 만에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8.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바이주의 주력 소비층이었던 중장년층은 고령화되고,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독한 술에 열광하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잔을 비우는 속도로 기개를 증명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접대와 청탁의 자리를 채우던 술의 쓸모는 옅어졌고, 소비자는 이제 건강과 취향, 그리고 가격을 함께 따진다. 9. 결국 중국의 주류 업계가 내놓은 답도 비슷하다. 술을 가볍게, 그리고 부드럽게 만들어 젊은 세대가 부담 없이 손을 뻗을 수 있도록 만들 것.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우량예(五粮液)는 29도짜리 '이젠칭신(一见倾心)'을 내놓았고, 중국 10대 명주 중 하나인 루저우라오자오(泸州老窖)는 저도화한 국교1573을 앞세워 젊은 소비자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10. 시장은 점점 소수의 대형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작은 지방 양조장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중이다. 생산량 감소와 소비층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공자의 이름조차 예외일 수는 없었던 셈이다. 11. 얼마 전 국내 백주 업계 관계자에게 "자약 블랙은 더 이상 국내에 수입되지 않아 사실상 단종된 제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전통적인 바이주의 문법에 가까웠던 65도의 고도주인 블랙은 왜 더 이상 수입되지 않는 것일까. 내막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백주 시장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 장면은 오늘날 바이주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2. 소비자들은 권위보다 친근함, 무게보다는 접근성을 선택한다. 국내 시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높은 가격의 초고도주인 바이주는 위스키가 구축한 프리미엄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13. 어쩌면 변한 것은 술이 아니라 술을 소비하는 시대의 문법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공부가주 자약(子約)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지금 중국의 백주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에 가깝다.

공부가주 자약

메이커 없음

맛집개척자

글이 너무 좋네요. 공부가주의 변화를 이렇게 분석하니 이해가 잘됩니다.^^

권오찬

@hjhrock 제가 갖고 있는 고량주에 대한 인식이 소주보다 가성비가 떨어지는데 과연 좋은 선택인가? 였거든요. 또한 고도주이다 보니 음미할만한 술인가? 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이 술은 술린이인 제 입장에서도 꽤 맛있어서 글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