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열기

#파주 #연꽃냉면 #물냉면 * 한줄평 : 어머니의 연화몽, 딸의 연꽃냉면 1. 딸을 밴 여인이 꿈에서 연꽃 만발한 못을 보면, 그 아이는 자라 귀하고 맑은 사람이 된다는 믿음이 있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도 그 위로 정결한 꽃을 밀어 올리는 식물이기에, 연꽃은 오래도록 속됨을 뚫고 피어나는 것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오래된 믿음이 파주의 한 냉면집 상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집을 찾고서야 알았다. 2. 냉면집 상호에는 또 다른 오래된 문법이 있다. 을밀대, 진남포, 대동강, 능라도. 하나같이 두고 온 땅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 걸어놓은 것들이다. 실향민이 남쪽에서 다시 국수 그릇을 마주하며 택할 수 있는 것이 몸으로 익힌 조리법과 잃어버린 지명, 이 두 가지뿐이었을 때, 상호는 자연히 고향을 대신하는 자리가 되었다. 3. 그런데 파주의 연꽃냉면이라는 이름은 언뜻 이 계보에서 한참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지명도 아니고 실향의 정서도 묻어나지 않는, 다분히 서정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연꽃냉면이라는 상호 역시 결국은 땅에서 비롯된 작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보통 냉면집은 상호로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지만, 이 집은 벽에 걸린 지도 위의 두 송이 연꽃으로 자신의 계보를 설명하고 있다. 5. 제주의 연꽃은 어머님께서 2015년 개업했던 연화몽이라는 냉면집이고, 파주의 연꽃은 그 따님 내외가 물려받아 차린 연꽃냉면이다. 연화몽은 애월읍 하가리에서 처음 문을 열어 지금은 한림으로 옮겨 킹떡이라는 간판으로 영업 중인데, 그 첫 자리에 연화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딸을 배 속에 품었을 때 꿈에 연꽃 만발한 못을 보았고, 연화몽이라는 이름은 그 태몽에서 나왔다. 동네의 못과 태몽의 못이 같은 자리에서 겹친 셈이니, 연꽃냉면이라는 이름은 진남포나 대동강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다만 잃어버린 고향이 아니라 처음 뿌리내린 땅의 이름을 걸었을 뿐이다. 6. 이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역설과도 마주친다. 제주는 국내 메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최대 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메밀은 냉면이 아니라 빙떡과 몸국, 메밀범벅으로 이어졌다. 7. 제주에 메밀냉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8년,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는 영농법인이 평양냉면집을 연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메밀의 산지에 메밀국수가 없었다는 이 어긋남은, 냉면이 재료가 아니라 문화와 수요의 문제였음을 조용히 증언한다. 8. 연화몽이 문을 연 그 무렵은 메밀면을 쓰고 싶어도 쓸 도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제주에는 메밀냉면에 대한 수요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었던지라, 궁리 끝에 연화몽이 선택한 것이 고구마전분면이었으리라. 그런데 한우를 우려내고 동치미를 더해 숙성시킨 육수를 받아보면 평양냉면을 떠올리게 한다. 면은 함흥의 방식으로, 국물은 평양의 방식으로 지어진 냉면이 제주에서 이렇게 태어났다. 9. 냉면이라는 음식 자체가 낯설던 섬이었으니 장사가 순탄했을 리 없다. 당시 제주에서 냉면은 한여름을 건너는 음식이었지, 사계절 수요가 꾸준했던 음식이 아니었기에 겨울이면 냉면 양념장을 응용한 즉석 떡볶이와 한라산 볶음밥을 함께 팔며 계절을 넘겼다. 10. 그 딸이 자라 결혼을 하고, 자신의 이름이 된 못의 사연을 간판에 다시 걸고 파주에서 냉면집을 열게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연꽃냉면에서 냉면 못지않게 눈여겨볼 것이 만두다. 냉면이 차가운 음식이라면 만두는 그 온도를 받쳐주는 음식이다. 살얼음 육수로 식어 있던 입안은 따뜻한 만두 한 점으로 다시 풀리고, 이어지는 냉면 한 젓가락은 처음보다 더 또렷한 청량감을 남긴다. 이 집에서는 만두가 곁들임이 아니라 냉면을 완성하는 한 축이다. 만두는 또한 컵에 담긴 뜨거운 육수에 잠시 담갔다가 건져 먹으면 사뭇 다른 음식이 된다. 뜨거운 국물을 머금은 만두피가 촉촉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속에 눌러 담은 소의 향이 한층 진해진다. 11. 살얼음 낀 육수 위로 편육 한 점과 반으로 가른 달걀이 얹힌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면 살얼음도 함께 따라 올라온다. 그것을 한입에 밀어 넣는 순간 식도는 저도 모르게 오그라들며 차가운 육수를 받아들인다. 그 짧은 수축 뒤에 밀려오는 청량감. 냉면 한 그릇이 여름을 견디는 방식은 늘 이렇게 조용하다. 12.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벽에 걸린 대한민국 지도를 바라봤다. 제주와 파주, 두 곳에는 같은 연꽃이 피어 있었다. 연꽃은 봄꽃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가장 무더운 계절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을 올린다. 연꽃냉면도 그러했다. 제주에서 피어난 연꽃 한 송이가 바다를 건너 파주에서 다시 꽃을 올리고 있다.

연꽃냉면

경기 파주시 와석순환로515번길 61 3층 302호

맛집개척자

고구마전분면을 넣은것을 이렇게 해석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글이 참 잘 읽히는게 문장력이 너무 좋아지신거 같아요.^^

권오찬

@hjhrock 올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리뷰말고 월에 2개 이상 브런치에 칼럼급 글을 올리는거에요. 늘 따스하게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호수속으로

저도 주말에 한양가서 평냉먹고 왔는데...😊오찬님, 버킷리스트 응원할게요👍

권오찬

@skylake123 까꿍~ 하늘호수님 사시는 지역은 백반 문화가 워낙 발달한 곳이라 면문화가 다른 지역 대비 약하지요. 특히나 냉면이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서울 위주로 발달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지요. 그래도 제 개인적인 경험이긴 한데..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께 어복쟁반과 냉면 대접해드리면 만족도가 꽤 높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