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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안덕 #한라산아래첫마을 #비비작작면 * 한줄평 : 한라산 아래 첫 마을, 광평리에서 만난 메밀냉면 1. 제주의 대표적인 국수는 '고기국수'이지만,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제주에 대거 난입하여 지금의 칠성로와 북신작로에 저잣거리를 형성하고 건면을 도입한 후 탄생한 음식으로 역사는 100여 년 남짓하다. 1920년대 무근성 입구에 최초의 건면 공장인 <석산이네 국수공장>이 들어서면서 육지의 잔치국수를 제주식으로 정착시킨 것이 바로 고기국수이다. 실제 제주민속사박물관 어디를 둘러봐도 면을 만들어내는 국수틀이나 홍두깨는 존재하지 않으며, 제주 토박이들에게 여쭤봐도 메밀로 만든 꿩칼국수만이 기억 속에 존재할 뿐 고기국수나 밀냉면의 주재료인 밀가루로 만든 면은 오히려 더 생소할 뿐이다. 2. 그런데 2015년 제주도가 '제주 메밀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이후 제주산 메밀을 주재료로 하는 식당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해발고도 500m 중산간 지역에 자리 잡은 광평마을 역시 마을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영농법인을 설립하고, 메밀 100%의 평양냉면을 주력 메뉴로 영업하고 있다. 3. 지금이야 평일 점심에도 대기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인기가 많다지만,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고령화로 몇십 년 후면 고향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정이긴 하나, 광평리에서 키운 메밀의 외부 판로 개척도 쉽지 않았기에 식당 운영을 통한 자체 소비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 2018년경이다. 그러나 영농법인의 조합원 그 누구도 식당 운영 경험이 없어 메밀칼국수와 빙떡, 메밀 고사리 육개장 등의 메뉴를 선보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썩 좋진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제주 토박이 입장에선 시내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을 굳이 중산간 지역까지 와서 먹기엔 메뉴가 한 끗 아쉬웠을 테고, 관광객 입장에선 고기국수와 제주 바다 생선으로 뜬 회, 흑돼지 구이 등 좀 더 대중적인 메뉴에 비하면 비주류 음식이었을 테니. 4. 한라산아래첫마을의 '지금까지 제주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제주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이라는 캐릭터는 2019년 7월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비비작작면'을 경험해보면 서울 서초동의 <서관면옥>의 '골동냉면'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계산을 하며 주인장께 여쭤보니 서관면옥에 광평마을의 메밀을 공급해주고, 한라산아래첫마을의 냉면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하신다. 5. 비비작작은 어린아이가 천진난만하게 흙장난하듯 막 흩트려놓은 모양새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인데, 실제 플레이팅된 음식은 좌우로 길게 늘어진 한라산을 닮아 비비작작하기 아까울 정도이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 즈음에는 고기 고명과 오이지, 노랗게 부쳐낸 계란 지단과 실홍고추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고, 메밀면의 주위를 곱게 간 참깨, 통들깨, 무채와 버섯무침, 김가루, 무순 등 제주에서 난 음식으로 만든 고명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한라산 주변의 오름을 상징화한 듯하다. 6. 무더운 여름, 물냉면 역시 몹시 만족스러웠는데 평양냉면이라기엔 염도가 다소 높은 편이고, 제주냉면이라기엔 과거에 없던 음식이라 비교군이 없어 주인장께 음식의 지향점을 여쭤보니 제주사람들에게 슴슴한 평양냉면은 너무 낯선 음식인지라 입맛에 맞게 육수를 변형하였다 한다. 7. 제주의 순박한 농부들이 만든 자연 식재료를 직접 가공하여 만든 음식이라는 점에서, 제주에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음식이라는 점에서, 제주를 뻔하지 않게 형상화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방문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본 글의 전문은 brunch.co.kr/@ochan/46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라산 아래 첫마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675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