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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찬
추천해요
3년

#무교동 #을밀대 #평양냉면 * 한줄평 : 남한의 독자적인 맛, 평양냉면 1.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맹목적인 신앙과 신조에 입각하여 도그마를 고수하는 것을 <교조주의>라 한다. 문화는 때로 중심보다 주변부에서 교조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중심부로 편입하려는 주변부의 열망이 강해서인지 정통에 입각한 근본주의를 표방하지만, 중심부를 가리켜야 할 나침반은 이미 고장나버린 상태이다. 2. 음식에 이와 같은 사례가 있으니 바로 <평양냉면>이다. 잘 하는 평양냉면집을 가면 메밀향 가득한 면수가 나오고, 메밀의 함량은 80% 정도는 되어야 상급으로 치고, 육수는 슴슴한 육향이 정신을 가다듬게 하고, 담백함을 넘어 슴슴함으로 먹는 음식에 식초와 겨자를 먹는 것은 냉면을 사랑하는 이에게 있어 어디 가당키나 했던 일이었던가?! 3. 남한 사람들의 이러한 평양냉면에 대한 굳건한 신앙은 2018년 남북정상회의 당시 평화의 상징으로 북한이 준비한 <옥류관 평양랭면>이 크게 허물어뜨렸다. 4. 정작 평양의 순수혈통 냉면은 남한의 맑고 투명한 육수와는 달리 간장이 들어가 검은 색을 띠었으며, 면 역시 식소다를 사용하여 남한의 칡냉면과 같은 색이였더랬다. 새콤한 산뜻함을 더해줬던 식초는 육수가 아닌 면에 직접 뿌리는 형태였고.. 심지어 옥류관의 반죽 배합은 메밀이 4할, 전분이 6할이었으니.. 5. 평양냉면에 관한 교조주의로 을밀대의 냉면 리뷰를 시작함은 나 역시 어느 정도 냉면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혹은 50여년 역사의 평양음식점 노포가 다른 일반 평양냉면과 다른 점이 보였기에 서두를 그렇게 꺼내보았다. 가. 평양냉면집에선 메밀을 삶으니 메밀면수를 주고, 함흥냉면집에선 전분으로 면을 반죽하니 면수 대신 육수를 주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인데, 이 집은 평양냉면 노포임에도 <면수를 섞은 육수>를 준다. 색이 뽀얗고 맛이 깊은 것이 꽤 잘 끓여낸 설렁탕과 곰탕의 중간 어디 지점쯤인데 이는 사골과 여러 부위의 고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 을밀대 일반 평양냉면에는 입자가 꽤 두꺼운 육수 얼음이 들어간다. 시원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 냉면이라지만, 맛에 예민한 이들은 육수의 농도가 변한다고 얼음이 들어간 음식은 기피하기도 하고, 얼음 입자가 식감도 해치거니와, 너무 차가운 음식은 맛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집은 의외로 기본값이 ‘얼음보숭이’ 냉면이다. 참고로 이 집의 얼음보숭이 냉면은 냉장 시설이 변변치 않던 시기 육수 맛의 변질을 막기 위해 얼렸던 전통을 이어내려오기 위해 고수하는 방식이다. 얼음 육수가 싫다면 거냉이라는 히든 메뉴로 주문하면 된다. 다. 평양냉면은 물이요, 함흥냉면은 비빔이라는 것이 남한의 국롤인데 이는 면의 겉면과도 어느정도 닿아있는 신빙성있는 이야기이다. 평양냉면 면의 겉면은 일반적으로 미끈하여 비빔양념과의 흡착도가 좋지 않은데 이 집은 면의 겉면이 곰보처럼 우툴두툴하다. 아직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을밀대의 비빔냉면이 크게 기대되는 지점이다. 공부는 끝이 없다. 음식에 대한 공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정도면 어디 가서 음식 이야기로 뒤지진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배움이 깊어질수록 나의 부족함이 더욱 또렷해진다. 어쨋거나 퇴근길 가볍게 식사와 반주를 할 수 있는 좋은 식당을 만났다. • 추가잡설 식사 내내 무언가 어색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젓가락의 길이이다. 분명 이 집의 젓가락은 다른 평양냉면집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젓가락보다 길다.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생선뼈를 발라내는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일본의 젓가락이 가장 짧고, 식탁 중앙에 메인 음식을 공유하며 음식을 덜어먹는 중국의 젓가락이 가장 길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 길이이자 하이브리드 용도인데, 을밀대의 젓가락은 한국과 중국의 중간 지점이다. 어느 블로그에서는 큰 냉면 그릇에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올려 걸쳐놓고 식초를 뿌리기 위한 용도때문에 길다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을지면옥의 냉면 그릇 사이즈도 만만치 않은데 젓가락 길이는 한국 평균 사이즈인 것을 보면 신뢰도가 낮다. 심지어 젓가락은 식사가 주목적이지 양념을 뿌리기 위해 긴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은 좋은 설명이 아니다. 난 오히려 평양이라는 지역이 중국 사신이 들어와 한양까지 가는 이동경로에 있는 도시로 접대를 하기 위한 교방문화가 발달했기에 긴 젓가락을 사용하진 않았을까라는 추론을 해보았다. 물론 이도 정확하진 않다. 실제 을밀대가 창업한 시기는 1971년으로 한국전쟁 이전 평양의 교방문화가 맥을 잇고 있던 시기와도 거리가 있고, 창업주가 냉면을 배운 곳은 평양이 아니라 대구로 알고 있다. 어찌되었건 입으로는 음식을 음미하고, 머리로는 식당의 역사를 추론하니 이또한 식도락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아님말고

을밀대

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40 센터플레이스 지하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