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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찬
추천해요
2년

#신사동 #보타르가 #어란파스타 * 한줄평 : 조선 어란과 이탈리안 파스타 •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생선알 요리 • 국내 최고 어란 명인, 영암의 김광자 할머님 • 완벽한 파스타 소스와 포카치아 빵 1. 생선은 한번에 수백개 이상의 알을 낳기 때문에 생선알은 고래로부터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수렵 농경 시대로부터 내려온 “먹음으로써 그 힘을 갖는다”라는 주술적 의미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효한 믿음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녀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을 그린 괴이한 제목의 일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역시 이러한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다. 2. 생선알 특유의 식감과 풍미가 육고기 못지 않다 보니 예로부터 철갑상어의 알은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였고, 성게알은 스시야에서 가장 값비싼 재료 중 하나이며, 명태의 알인 명란은 우리 식탁에서 널리 사랑받는 반찬이다. 3. 만드는 과정이 수고로워 비싼 가격때문에 대중화되진 않았지만 권세가와 재력가들의 사랑을 받는 생선알로 만든 음식이 있으니 바로 <어란>이다. 3~4월 봄철 알밴 숭어를 잡아 50여일간 그늘에서 청주와 조선간장, 소금과 참기름을 이용해 말리니 알 한쌍에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4. 국내 어란 명인으로는 영암의 김광자 할머님을 제일로 쳐주는데 압구정 로데오 거리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보타르가>에서는 이 분의 어란을 공수하여 사용한다. 참고로 보타르가는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어란을 일컫는 단어이다. 5.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어란을 소금으로 염장하여 햇볕에 말리는데 아무래도 우리네 어란 제조 방식이 그늘에서 소금 뿐 아니라 간장과 참기름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금만 사용하여 짠 맛이 강조된 지중해 어란보다는 감칠맛이 한수위라 볼 수 있다. 6. 상호에서 직관적으로 보타르가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가 <어란 파스타>라는 것을 의미한다. 올리브 오일과 어란의 감칠맛은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파스타의 진한 풍미를 불러오는데 그 비싼 어란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먹는 방법은 포카치아(빵)을 추가로 받아 오일 소스를 찍어 먹는 것이다. 7. 굽기 정도를 미디엄으로 주문한 채끝 스테이크도 완벽하다. 소금과 후추, 오일 등 기본 재료로만 시즈닝을 한 듯 고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고기를 썰어내는 나이프의 손맛 자체가 <완벽한 고기 그리고 굽기와 레스팅>이 행해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8. 주문했던 모든 음식이 훌륭했지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히려 음식보다 식전빵으로 나온 <포카치아 리필 정책>이다. 빵은 한국의 식탁에서 공기밥과 같은 역할이며, 지금이야 물가 상승으로 공기밥 1천원을 따로 받는다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배고픈 상태로 식당을 나서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 인심 좋은 공기밥 무한 제공 식당이 그래도 꽤 여럿 존재했었다. 9. 가격은 비싸고 양은 적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입장에서 빵을 계속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 매출 깍아먹기 행위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이 매력적인 식당의 솜씨좋은 쉐프가 공들여 만든 파스타 소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은 6항에 상술한 방식이다. 10. 훌륭한 식당, 좋은 인연, 즐거운 대화가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 추가잡설 조선 시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는 <어란>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음식이다. 어란은 숭어 뿐 아니라 민어 등의 알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쌍으로 대칭한 알의 모양과 특유의 풍미를 보면 아무래도 숭어를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에는 식품명인 지정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 식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각 분야의 명인을 지정하여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중 수산전통식품 분야로 최초의 명인 반열에 오른 분이 바로 영암에서 어란을 만들고 계시는 김광자 할머님이다. 대대로 어란 만드는 집에 19살에 시집오셔서 75여년을 어란을 만드셨다는 할머님은 백수를 몇 해 앞두신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명인을 소개하는 다큐에서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인 어란을 만드는 과정을 감명깊게 본 적이 있었는데 <조선 어란과 이탈리안 파스타>의 조합이라니 이 식당에서 굉장히 흔치 않은 미식 경험을 했다.

보타르가

서울 강남구 언주로170길 16 JS빌딩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