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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낭푼밥상 #푸른독새기콩 #콩국수 * 한줄평 : 제주 토종콩, 푸른독새기콩 콩국수 1. 뭍에서는 주로 백태로 메주를 쑤어 장을 앉혔지만, 제주의 장독에 들어간 것은 껍질도 속살도 연둣빛이 감도는 푸른 콩이었다. 동그스름한 알이 갓 삶아낸 달걀을 닮았다 하여, 달걀을 뜻하는 제주말 ‘독새기’를 붙여 푸른독새기콩이라 불렀다. 집집마다 밭 귀퉁이에 이 콩을 심었고, 장을 담글 때면 으레 이 콩을 골랐다. 2. 제주에서 콩 농사는 먹거리를 얻기 전에 흙부터 살리는 일이었다. 화산이 남긴 검고 메마른 흙은 곡식을 넉넉히 품지 못했고, 제주 사람들은 그 척박함을 달래려 보리밭 고랑 사이에 콩을 끼워 길렀다. 그렇게 거둔 콩으로 장을 담그고, 가루를 내어 배추와 무를 넣은 콩국을 끓였다. 혼례와 상례처럼 큰일을 치르는 날에는 어렵사리 두부를 눌러 상에 올렸다. 두부가 날마다 먹는 음식이 아니라 통과 의례의 음식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섬에서 콩 한 줌이 지녔던 무게를 짐작할 만하다. 3. 푸른독새기콩으로 담근 제주의 콩장은 2013년 국제슬로푸드협회의 ‘맛의 방주’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등재 목록에도 ‘제주푸른콩장’은 푸른독새기콩 등 제주 토종 콩으로 만든 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4. 그러니 제주 콩국수에 대한 내 관심은 국물의 녹진함이나 식당의 명성보다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 집에서 가장 제주다운 콩국수를 내는가. 그렇게 찾아간 곳이 노형동의 제주 향토 음식 전문점 낭푼밥상이다. 5. 낭푼밥상은 제주 향토 음식 1호 명인 김지순 선생과 그의 아들 고 양용진 원장이 함께 일군 밥집이다. 어머니가 제주 사람들이 오래 먹어 온 음식을 몸으로 기억해 되살렸다면, 아들은 구전으로 전해지던 음식과 식재료를 조사하고 기록해 섬 바깥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옮기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6. 제주 향토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내게도 낭푼밥상은 각별한 곳이다. 처음 그 문을 밀고 들어선 것은 2021년 여름이었다. 당시 제주 향토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양용진 원장의 글과 자료를 많이 찾아보던 때였고, 그곳에서 그의 책 『제주식탁』도 만났다. 7. 제주 음식이라면 고기국수와 흑돼지 어름에서 멈춰 있던 육지 사람의 눈이 그 무렵부터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갈치와 늙은 호박을 함께 끓인 갈치호박국, 옥돔에 무를 저며 넣은 옥돔뭇국, 된장을 풀어 먹는 물회, 돼지를 잡은 날의 접짝뼈국과 수애. 이름을 하나씩 익힐수록 조리법보다 왜 제주 사람들이 그렇게 먹어야 했는지가 궁금해졌고, 그 물음의 끝에서는 자주 양용진 원장의 글과 기록을 만났다. 8. 양용진 원장과는 그날 잠시 말을 나누고 『제주식탁』에 사인을 받은 것이 인연의 거의 전부다. 그럼에도 제주 음식을 공부하는 동안 그의 글에서 적잖이 배웠고, 언젠가부터 마음속으로 그를 스승으로 삼아 왔다. 9. 그해 낭푼밥상에서 받은 제주 가문 잔치 상차림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몸국과 수애, 고기반이 한 상에 오르는 내력을 따라가다 제주의 잔치와 궨당 문화까지 들여다보게 됐고, 몇 해 뒤 그 경험은 내가 출간한 『한국인의 오래된 밥집을 찾아서』의 한 장으로 남았다. 10. 지난해 여름, 양용진 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5년 만에 낭푼밥상을 다시 찾았다. 11. 이번 여행을 앞두고는 한식진흥원에서 열린 제주 향토 식재료 쿠킹 클래스에 참여해 푸른독새기콩을 미리 공부했다.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콩을 직접 보고 이 콩으로 만든 음식을 접하면서, 지금 제주에서는 푸른독새기콩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12. 낭푼밥상에서 주문한 음식은 푸른독새기콩 콩국수였다. 이 한 그릇을 두고 어느 집보다 국물이 진하다거나 고소하다는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콩국수는 본디 제주만의 음식이 아니고, 낭푼밥상의 콩국수를 오래된 제주 향토 음식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제주가 오래 끓여 온 콩 음식은 국수가 아니라 콩국이었으니 말이다. 13. 그러나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국수에 제주 흙에서 자란 콩이 들어가면 그릇의 내력은 달라진다. 제주에는 여름이면 줄을 서서 먹는 콩국수집이 여럿 있다. 정작 제주에서 자란 푸른독새기콩으로 만든 콩국수는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다. 14. 그래서 나는 이 그릇에 ‘가장 맛있는 콩국수’가 아니라 [가장 제주다운 콩국수]라는 이름을 붙여 두고 싶다. 15. 식사를 마친 뒤 김지순 선생님께 가져온 책을 건넸다. 5년 전 아드님이 『제주식탁』에 써 준 글귀도 함께 보여 드렸다. “권오찬 님! 제주 음식에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쓴 책의 첫 장에 양용진 원장의 이름을 적었다. “양용진 원장님께 배운 제주 음식 이야기를 제 책에도 소중히 담았습니다.” 2021년에는 그의 책을 들고 낭푼밥상을 나섰고, 5년 뒤에는 그곳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담긴 내 책 한 권을 두고 나왔다. 16. 오래된 음식을 지킨다는 것이 반드시 옛 조리법을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땅에서 오래 살아온 식재료가 지금 사람들의 밥상에서 계속 쓰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군가 푸른독새기콩으로 만든 음식을 찾으면 농부에게는 이 콩을 다시 심을 까닭이 생기고, 콩의 이름도 밭과 식탁에서 계속 불릴 수 있다. 17. 양용진 선생이 그러했듯, 나도 제주의 향토 음식과 식재료를 하나씩 찾아 글로 남겨 보려 한다. 이번에는 푸른독새기콩이다.

낭푼밥상

제주 제주시 수덕5길 23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