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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신설오름 #몸국수 * 한줄평 : 잃어버린 고리, 몸국수 1. 제주의 가문잔치는 돼지를 잡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날을 ‘돗 잡는 날’이라고 부른다.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하는 모든 일은 마을의 도감 어르신이 관장했다. 도감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 모두에게 음식이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분배하는 일이었다. 2. 한정된 음식으로 며칠씩 이어지는 잔치를 치러야 했다. 고기는 여러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얇고 넓적하게 썰어 괴기반에 올렸다. 돼지를 삶아낸 국물에는 모자반을 넣어 양을 늘리고, 메밀가루를 풀어 든든함을 더했다. 걸쭉하게 끓여낸 이 음식이 바로 [몸국]이다. 3. 일제강점기, 특히 태평양전쟁으로 접어들면서 제주 바다의 전복과 소라뿐 아니라 톳과 모자반 같은 해조류도 수탈의 대상이 됐다. 몸국을 끓이는 데 빠질 수 없었던 모자반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4. 일제의 수탈로 귀해진 모자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바로 국수였다. 제주 원도심사를 연구한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의 기록에 따르면, 1920년대 무근성 입구에는 제주 사람이 직접 건면을 만들어 팔던 ‘석산이네 국수집’이 있었다. 당시 제주에는 국수틀이나 홍두깨 같은 제면 도구조차 흔치 않았으니, 건면은 제주 사람들에게 새로운 식재료였다. 실제 1917년생 제주 주민이 어린 시절 국수를 먹었다는 구술도 남아 있어 1920년대에는 이미 국수가 제주 성안에 퍼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 몸국에 넣을 모자반이 귀해지던 시기에, 제주 사람들의 손에는 전에 없던 건면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모자반이 귀해지자 몸국에 국수를 넣어 양을 늘리기 시작했다. 제주의 가문잔치에서 이어져 온 관습이 있으니 모자반을 아예 빼지는 못하고, 부족한 모자반만큼 국수가 들어갔다. 6. 육지에서 건너온 잔치국수와 제주의 몸국이 한 그릇에서 만난 것이다. 몸국도 아니고, 지금의 고기국수도 아닌 음식. 이렇게 몸국수는 결핍에 의해 태어났다. 7. 이제 제주에서도 이 몸국수를 내는 식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제주시 일도동의 ‘신설오름’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가운데 하나다. 8.신설오름에서는 몸국과 고기국수, 그리고 몸국수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몸국 한 그릇에 국수사리를 넣으면 면 사이로 잘게 풀어진 모자반이 함께 딸려 올라온다. 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음식으로 갈라진 몸국과 고기국수가 다시 한 그릇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9. 몸국수는 몸국보다 한결 든든하다. 걸쭉한 국물이 면에 달라붙고, 돼지국물의 묵직함과 모자반의 바다 향도 그대로 남아 있다. 국수가 들어갔다고 몸국의 성격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10.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오늘날의 고기국수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렴풋이 보인다. 지금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몸국과 고기국수가 어디쯤에서 맞닿아 있었는지 직접 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설오름

제주 제주시 고마로17길 2

맛집개척자

몸국수는 아주 독특하고 모자반의 모자람을 국수로 채운 스토리도 너무 재밌네요.^^

권오찬

@hjhrock 중국집 덴푸라가 탕수육에, 우동이 짬뽕에 의해 점차 사라졌듯 몸국수도 고기국수와 그런 관계인지 하는 집이 많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