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언가를 먹기 위해 먼 걸음을 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먹는 일이 목적이 되는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나는 피순대를 먹으러 갔다. 그냥, 피의 맛이 떠올랐다. 그것뿐이었다. 식당은 조용했다. 말없이 물이 놓였고, 말없이 피순대가 나왔다. 피순대라는 건 그 이름부터 조금은 과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교 없이, 솔직하게 나온다. 막창 속에 검은 선지가 꽉 차 있다. 당면도 없고, 찹쌀도 없다. 쫀득한 막창의 탄력을 혀끝으로 느끼고 그 안에 퍼지는 선지의 미묘한 쓴맛과 철분 냄새가 묵직하게 밀려온다. 조용히 씹었다. 씹는 일이, 생각하는 일보다 쉬운 날이었다. 음식을 씹는 리듬이 마음의 파동을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입가에 닿은 무언가가 있었다. 초장이었다. 전라도에선 순대를 초장에 찍어 먹는다. 피순대에도 초장을 찍어 먹는 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먹는다. 별다른 논리는 없다. 그래서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찍어 먹었다. 이상할 만큼 잘 어울렸다. 초장의 새콤한 맛이 피의 무게를 조금씩 들어 올려 주었다. 핏덩어리가 입 안에서 가볍게 부서지고 그 위로 초장의 산미가 미끄러졌다. 맛이란 건 원래 그런 것이다. 이유보다는 감각이고, 분석보다는 기억에 가까운. 옆에는 상추겉절이와 양파 새우젓 무침이 놓여 있었다. 상추는 아삭했고, 들깨가루가 어설프게 뿌려져 있었고, 양파는 찬물에 오래 담근 듯 깔끔했다. 그 위에 얹힌 새우젓은 짠맛보다는 묘한 고요함을 줬다. 그 조합은 오래된 LP판에서 들려오는 낡은 재즈의 브러시 소리처럼 나를 스치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막걸리. 걸쭉하고 희뿌연 그 술은 말없이 모든 걸 덮었다. 첫 잔은 조심스러웠고, 두 번째 잔은 부드러웠고, 세 번째 잔은 아무 생각 없이 삼켰다. 막걸리는 모든 풍경을 흐리게 한다. 그게 좋았다. 흐릿한 마음, 흐릿한 말, 흐릿한 기억. 다 먹고 나니 테이블 위엔 조용한 피의 흔적만이 남았다. 젓가락도, 잔도, 더 이상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길 위의 소음도, 시간의 속도도 내게는 닿지 않았다. 피순대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혼자 있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조금 더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 요새 회사 시나리오팀 콘텐츠 디자이너 두분이 휴직과 퇴사를 신청 하셔서, 울며 겨자 먹기로 10여년 만에 글쓰고 있습니다. ㅎㅎ 책좀 읽어 보신분들은 아실수도 있을듯 한데, 유명 작가들의 문체를 흉내내서 적어 봤습니다. 기왕 글 쓰는김에 습작삼아 가끔씩 올려 보겠습니다.
전주 피순대 추어탕
서울 강북구 오현로31길 173 1층
FC서울 @hansol_1995
와 피순대 미쳤다...
빵에 진심인 편 @awsw1128
근처 장수마늘보쌈이랑 벼랑순대국 묶어 가야겠네요..
미오 @rumee
어쩐지 글이 와… 응? 했답니다. 소싯적 글을 많이 쓰셨나봐요 ☺️ (이런 쁜지님도 넘 좋습니다아!!)
표독한 상남자 “이성복” @bok2wifi
글이 예뻐요, 약간 김훈소설가님 문체같기도 하구요~ :)
쁜지 @punzi80
@hansol_1995 제가 먹어본 피순대 중에선 제일 녹진하네요. ㅎㅎ
쁜지 @punzi80
@awsw1128 저는 벼랑이랑 같이 다녀 왔습니다.
쁜지 @punzi80
@rumee 신방과 출신이긴 합니다. ㅎㅎ 평론가 같은게 되고 싶었던 ㅎㅎ
쁜지 @punzi80
@bok2wifi 아무래도 신방과 출신이다 보니 김훈씨 모사도 꽤 헸었던게 좀 남아 있나 봅니다. ㅎㅎ 흉내는 다른작가 흉내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