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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B
4.5
1개월

황혼의 김치볶음밥. — 어두운 거리를 쓸쓸하게 밝히고 있는 백반집 하나. 노년의 남자 사장님이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한 쪽 벽은 앳된 얼굴의 배우들이 공연 뒷풀이를 하는 사진들로 가득 차있는데, 사진 속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조용한 식당의 분위기와 대비를 이룬다.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김치볶음밥과 홍어 한 접시를 주문했다. 겸상이 어색한 이 두 요리가 한 식탁에 올려져 있는 사진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물론 이 조합에 술을 안 시킬 수는 없다. 김치볶음밥이 참 맛있다. 맛깔나게 묵은 김치를 화구에서 빠르게, 아삭함이 살아있게 볶고 반숙 계란후라이를 위에 턱 올려 내니 맛이 없을 수가. 너무 삭히지 않은 홍어는 고춧가루 깨소금만 살짝 찍어 생오이와 볶은 갓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여기에서도 갓김치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사장님께 김치가 참 맛있다 전하니, 아내분과 2년 전에 담군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식당을 함께 운영했던 아내분은 그맘때 즈음 암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시고 이후에는 남자 사장님이 홀로 식당을 지키고 계시다고 한다. 어머님의 공백만큼 묵은 김치가 아버님 요리의 빈 자리를 채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재 이 집은 점심에 하던 백반 장사를 멈추고 저녁 장사만 하고 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현재는 백반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복귀한 어머님이 해주시는 백반을 맛볼 수 있길 바라며 #백반을찾아서 네 번째 집으로 이곳을 소개하고 싶다. — www.instagram.com/colin_beak

덴뿌라

서울 성북구 성북로 75-1 1층

권오찬

항상 이 집 앞 도로를 지나며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벽면 가득 채운 사진 속 손님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내와 함께 담근 묵은 김치가 떨어지면 이 집도 혹시 문을 닫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Colin B

@moya95 저도 사장님 얘기 들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담백하게 얘기하셔서 더 애틋한 마음이…

권오찬

@colinbeak 담백하게 이야기하셨다는게 더 마음에 걸리네, 마치 돌부리처럼.. 이래 저래 정보를 찾아보니 덴뿌라는 최소 2002년 이전부터 장사를 했던 집이고, 상호와 음식간 괴리가 있는 건 먼저 있던 업장의 간판을 떼지 않아서라는데.. 이 공간을 함꼐 했던 사람과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아놨을까 싶다.

Colin B

@moya95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왕년에는 대학로에서 공연한 뒤 뒷풀이 장소로 애용되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녁 장사를 하시는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단골 손님들 오면 안줏거리도 만들어주고 본인도 가끔 함께 한 잔 하시기 위해서라고 하세요.

맛집개척자

어머님이 2년전 담은 김치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파네요..저도 어머님이 담근 김치를 한동안 먹지 못해 가슴아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ㅠㅠ

Luscious.K

먹먹한 맛있음이네요. 꼭 가보고 싶은 스토리가 느껴집니다. 요즘 콜린님 식당 초이스 능력이 한층 업글되심도 느껴집니다.

Colin B

@hjhrock 음식은 분명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제로써 작동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기쁜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Colin B

@marious 여기는 같이 가도 좋을 것 같아요.

Luscious.K

@colinbeak 좋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