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성북동 #금왕돈까스 #모듬정식 * 한줄평 : SINCE 1987, 금왕돈까스가 달라졌어요. • 기사식당 돈까스의 명가, 금왕의 부활 • 1980년대 기사식당 돈까스의 유행에 따른 시대적 배경 • 생선까스 대신 치킨까스로의 대체는 아쉬운 대목 1. 7080 중년 남성에게 <돈까스>는 제육볶음과 더불어 때되면 충전해줘야 하는 일종의 소울푸드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던 한국의 밥상 문화에 서양의 나이프와 포크를 본격 사용하게 된 돈까스가 1980년대 급격히 대중화되며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그 시절 돈까스를 먹으며 받은 <문화 충격>이 의식 저변에 잠재되어 있어 그러지 않나 추측해본다. 2. 성북동 언덕에 자리잡은 금왕돈까스는 내게 있어 추억의 장소이다. 삼선교 터줏대감인 큰 이모댁에 놀러온 국민학생 조카에게 ‘돈까스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며 데려가주신 곳이 이 곳이다. 그런데 외식 아이템이 다양화되며 어느 순간 서양 음식의 대표 주자격이었던 위치는 피자와 햄버거, 파스타에게 그 자리를 빼았긴데다 동일 카테고리인 <튀긴 음식>에서도 치킨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좌에 앉게 되니 돈까스의 인기는 급격히 사그라진다. 3. 그 와중에 <기사식당 돈까스> 원조격이던 이 집은 음식 조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돈까스의 크기는 작아지고, 기름 쩐내는 심각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쉬어버린 마카로니를 조우하고 발길을 끊어버린 것이 벌써 수년 전일이다. 4. 우연찮게 맛이 괜찮다라는 글을 접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방문을 하여 금왕정식을 주문해봤는데 문득 <명가의 재건>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5. 기사식당 돈까스의 어페타이저인 스프의 맛이 깊어졌다. 여전히 오뚜기스프를 연상케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와 크림을 추가한 듯 싶다.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는 온도감이 좋다. 기름에 튀겨 느끼할 수 밖에 없는 돈까스를 많이 먹기 위해 필수적인 가니쉬는 양배추가 아니라 깍두기라 생각한다. 예전 이 업장의 음식이 관리가 되지 않던 시절에는 깍두기가 무른데다 미지근하여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는데 작은 디테일 변화로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6. 고기의 두께는 원래 이정도로 얇았나? 싶을 정도인데 오히려 튀김옷과의 흡착도, 바삭한 식감 등의 잇점을 취하며 매력이 증가하였다. 정식에 함께 나온 함박스테이크는 익숙한 향신료의 맛이 살짝 치고 나가는데 튀김 일변도의 한상 차림에 스타카토를 준다. 다만, 정식의 구성이 생선까스 대신 치킨까스로 치환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7.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기사식당의 돈까스 역시 돈까스일 뿐이다. 고기를 얇게 펴서 튀겨낸 돈까스가 크게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기사식당 돈까스라는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우중충한 폐가로 망가지던 명가의 재건이 반갑기만 하다. # 추가잡설 1 서울에서 기사식당 돈까스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는 성북동과 남산을 꼽을 수 있다. 이제 성북동의 영화는 사라지고 이제 겨우 3곳의 업장(금왕, 오박사네, 서울)만 남아있지만, 그래도 깍두기와 고추 쌈장이 제공되는 형태의 기사식당 돈까스 형태가 정립된 것은 1980년대부터 돈까스촌을 이루었던 이 지역이 원조이다. # 추가잡설 2 특정한 음식이, 혹은 업장이 유독 성업을 이루었다면 그 배경을 추적해봐야 한다. 대전이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의 도시가 된 것은 미국의 구호 식량인 밀가루가 대량 유입되었고, 철도를 통해 전국으로 이송되는 와중 철도 교통의 요충지인 대전역 주변에 제분공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 경양식 돈까스의 권좌를 기사식당 돈까스가 탈환하게 된 것 역시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에서 택시 면허를 내주어 택시수가 급증하니 기사 식당이 폭발적으로 비례한 배경을 갖고 있다. 기존 기사식당의 단골 메뉴는 연탄 불고기였는데 일일히 고기를 뒤집어 가며 구워야 하는 수고로움 대신 미리 준비된 돈까스를 튀기기만 하면 되는 조리의 용이성까지 갖췄으니 공급자 입장에서도 효자 상품이였을테다. 거기에 더해 삼겹살 부위가 국민적 사랑을 받으니 돈까스의 재료 부위인 안심과 등심이 저렴해진 것도 한몫을 했다. 더군다나 그 시절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선진국으로 나아가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으니 음식 역시 서양의 돈까스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한 토양이 충분했었을 것이다. #성북동맛집, #경양식돈까스, #기사식당, #금왕돈까스
금왕 돈까스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8 1층
맛집개척자 @hjhrock
돈까스 참 푸짐하네요..요즘 이런 돈까스 별로 없어서 저는 잘 안찾게 되더라고요..제 아들에게는 일본식 돈까스가 소울푸드이듯이 저에겐 이런 돈까스가 소울푸드인데...ㅎㅎ
권오찬 @moya95
@hjhrock 아재들은 기사식당 경양식 돈까스와 제육, 부대찌개는 가끔씩 충전 꼭 해줘야합니다! ㅎㅎㅎ
포식자 @predator
개인적으로 습식 돈까스라 부르는데, 요게 뭔가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어요! ^0^ 수프에 마카로니!
난감 @So_adorable
처음 기사식당식 돈가스집에 갔을 때 고추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맛은 특별난 정도는 아니다 싶었습니다만.. 명가의 재건으로 표현하시니 또 가보고싶어집니다.
권오찬 @moya95
@predator 진짜 진짜 고수들만 아는 꿀팁인데, 돈까스 뒤집어서 드시면 끝까지 그나마 바삭하게 드실 수 있습니다. ㅋ 전 소스에 축축해지기 전에 다 먹어버려서;; ㅎㅎㅎ
권오찬 @moya95
@Chouchou_ 아주아주 옛날 초창기의 맛을 기억하고, 그리고 어디까지 망가졌는지를 아는 이라면 금왕의 부활이 반가울거에요. 기사식당 돈까스가 그리 대단한 맛은 아닌데 비교하자면 이 집 넘어서는 집이 많이 없어요.
권오찬 @moya95
@aboutdaldal 당시 대용량 이송에 용이했던 수단이 바로 철로입니다. 대전이 경부선과 호남선이 지나는 교차로다 보니 밀이 집산되었지요. 지금은 가락국수란 단어가 거의 사어가 되었는데, 서울에서 내려와 호남 방향으로 가려면 기관차를 바꿔끼웠어야 했거든요. 이 자투리 시간동안 급하게 대전역내에서 먹었던 음식이 바로 가락국수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