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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동 #흥남집 #회냉면 * 한줄평 : 오장동, 실향의 맛이 남은 골목 1. 어떤 음식은 고향에서 태어나고, 어떤 음식은 고향을 잃은 뒤에야 이름을 얻는다. 함흥냉면이라는 음식이 정작 함흥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함경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것은 ‘농마국수’였다. 농마, 곧 녹말. 개마고원에서 난 감자를 갈아 전분을 뽑고, 그 가루로 면을 빚어 생선회와 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던 음식. 그것이 서울 오장동에 내려와 비로소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함흥냉면은 함흥에서 태어난 음식이 아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그 상실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새긴 이름이다. 3. 1950년 12월, 흥남 부두는 아비규환이었다. 포위망이 좁혀오자 미군은 화물선에 피난민을 태워 남쪽으로 실어 날랐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한 척에만 만 사천여 명이 올랐다. 사흘 밤낮을 파도와 싸운 끝에 거제도에 닿았다. 목숨 하나 건진 사람들이 서울로, 부산으로, 속초로 흩어졌다. 4. 그중에서도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서울 중부시장 일대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란민에게는 집도, 친척도, 장독대도 없었다. 당장 먹고살 수단이 필요했다. 시장 좌판은 발품과 손재주만 있으면 버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리였다. 그들은 중부시장을 중심으로 포목점과 도매상을 꾸려가며 삶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붙잡은 것은 음식이었다. 5. 원산에서 태어나 흥남에서 살다 내려온 노용언 할머니가 1953년 오장동 좌판에서 국수를 팔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 이름은 ‘흥남옥’.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흥남집’이라 불렀다. 금호동과 신당동, 장충동에 흩어져 살던 실향민들이 하나둘 찾아들었다. 고향 음식을 먹는 일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돌아갈 수 없는 땅을, 입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었다. 6. 이듬해 한혜선 할머니가 같은 골목에 ‘오장동 함흥냉면’을 열었다. 두 집이 씨앗이 됐다. 1960~70년대 전성기에는 스무 곳이 넘는 냉면집이 골목을 채웠다. 오장동은 실향의 아픔 위에 세워진, 서울 음식 문화의 한 페이지였다. 7. 지금 남은 집은 흥남집과 오장동 함흥냉면, 단 두 곳이다. 스무 집이 두 집이 됐다. 도시의 결이 바뀌었고, 실향민 1세대는 거의 세상을 떠났으며, 냉면은 전국 어디서나 먹는 음식이 됐다. 굳이 오장동까지 찾아올 이유도 그만큼 희미해졌다. 8. 함흥냉면집의 간판을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남는다. 평양냉면집들은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우래옥은 ‘다시 찾아온 집’이라는 뜻이다. 전쟁 중 피란을 떠났다가 휴전 후 서울로 돌아와 다시 문을 열며 붙인 이름이다. 그 안에 이미 전쟁과 귀환의 서사가 담겨 있다. 을밀대는 평양의 누각 이름이고, 필동면옥은 가게가 선 자리를 이름으로 삼았다. 간판마다 내력이 있다. 9. 반면 함흥냉면집은 다르다. 대개 그저 ‘함흥냉면’이다. 어디를 가도 음식 이름이 곧 간판이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절박하다. 흥남 철수 이후, 시장 좌판에서 삶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간판은 자신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었다. 무엇을 파는지 알려야 사람이 모였다. ‘함흥냉면’이라 써 붙이면 동향 사람들이 알아보고 찾아왔다. 이름보다 음식이 먼저였고, 결국 음식이 이름이 됐다. 10. 흥남집도 처음에는 ‘흥남옥’이었지만, 사람들 입에서 ‘흥남집’이라 불리며 그 이름이 굳어졌다. 오장동 흥남집 간판 한켠에는 ‘1953’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노용언 할머니의 얼굴을 본뜬 초상화가 걸려 있다. 지금은 며느리와 아들이 그 맥을 잇는다. 전쟁의 기억은 흐려졌고, 1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11. 그러나 주문 즉시 뽑아내는 고구마 전분 면발과 사골 육수에는, 여전히 70년 전 좌판의 시간이 남아 있다. 스무 집이 두 집으로 줄었다. 그 두 집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단순한 관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은 것은 가게가 아니라, 돌아가지 못한 고향이다.

오장동 흥남집

서울 중구 마른내로 114 1층

맛집개척자

작가가 되시더니 날로 가슴에 와 닿는 문구가 늘어 납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그 상실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새긴 이름이다..이표현 너무 멋집니다.^^

권오찬

@hjhrock 뽈레에 초고를 쓰고 나중에 윤문해서 브런치로 발행해야지라고 생각하니까 게으름에 아예 손을 안 대더라구요. 애초부터 완성본을 쓰겠다라는 각오로!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