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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유일반점 #난자완스 #화상노포 #화교이주 * 한줄평 : 제주 화교 이민의 역사와 유일반점 이야기 1. 19세기 청나라의 대규모 화교 이주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농촌의 빈곤,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운동이 남긴 사회적 불안에서 비롯됐다. 먹고살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었고, 전쟁을 피해 떠난 사람도 있었으며, 애초부터 장사를 하러 바다를 건넌 사람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2. 이 대목이 나는 늘 궁금했다. 중국과 특별히 가까운 것도 아니고 개항장도 아니었던 척박한 제주섬에, 화교들은 어쩌다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 3. 실제로 제주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노포 중식당이 제법 여럿 남아 있다. 덕성원(1945년), 유일반점(1953년), 임성반점(1960년), 보영반점(1967년), 유성반점(1979년)처럼 개업 연도를 특정할 수 있는 곳 외에도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식당이 적지 않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은 우연히 들른 한 노포 화상 중식당의 벽에 걸린 낡은 선박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4. 제주시청 인근 유일반점의 벽 한켠에는 ‘해상호, 1950년 8월 산지천’이라는 짧은 설명이 붙은 목선의 흑백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낡은 목선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주 화상의 정착 역사와 만나게 된다. 5. 이 배의 주인은 중국 요녕성에서 해상운수업으로 큰 부를 축적했던 양낙산이라는 인물이다. 국공내전이 격화되고 살던 땅이 공산당의 수중에 넘어갈 처지에 놓이자, 1948년 그는 일가를 배에 태우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6. 인천을 거쳐 대만으로 남하하던 중 이들을 태운 70톤급 목선 해상호는 미 공군의 사격을 받아 항해 능력을 잃게 되고, 한국 해군에 의해 제주 산지천으로 예인된다. 제주는 이들이 처음부터 선택한 목적지는 아니었으나, 긴 여정에 지친 양낙산 일가는 결국 제주에 정착하게 된다. 7. 양낙산 일가는 인천에 잠시 머무는 동안 익힌 기술로 꽈배기와 만두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었다. 이때 먼저 제주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던 화교 왕씨가 이들을 헌신적으로 도왔다고 전해진다. 왕씨는 지금도 제주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최고 업력의 중식 노포 덕성원(1945년)을 연 인물이다. 8. 양낙산 역시 제주에서 생활의 안정을 찾아갔다. 제주 최초의 상권으로 불리는 칠성로에 중화요리집을 열었는데, 그 식당이 바로 1953년 문을 연 유일반점이다. 9. 지금 제주시청 인근 유일반점의 간판에는 ‘SINCE 1970’이라고 적혀 있다. 1970년은 유일반점이 처음 문을 연 해가 아니라 현재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한 해다. 유일반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점은 1953년 칠성로에 닿는다. 10. 함께 제주에 도착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상황이 정리된 뒤 화교 공동체가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인천으로 돌아갔으나, 양낙산 일가는 제주에 남는 쪽을 택했다. 11. 양낙산 이전에도 제주에 정착한 화교는 있었다. 하지만 양낙산은 일가친척과 자녀를 포함한 대가족과 함께 건너왔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정착은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칠 교육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양낙산은 중국대사관에 자녀 교육 문제를 탄원했고, 소식을 들은 전국 각지의 화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보탰다. 그렇게 제주 화교 자녀들을 위한 교육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1953년에는 YMCA 건물 한켠에서 교사 한 명과 학생 열 명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장사가 당장의 생계를 해결했다면, 학교는 다음 세대까지 이 섬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였다. 12. 1957년 양낙산 사부는 유일반점을 동생 양수명 사부에게 물려주었고, 이후 양수명의 아들 양병운 사부가 가업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유일반점을 운영하고 있다. 13. 양씨 일가의 중식당 계보도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양낙산의 후손과 일가는 홍보석, 송죽원, 북경반점, 아주반점 등을 열거나 이어받았다. 서로 다른 간판을 달고 있지만 그 집안의 제주 정착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 산지천에 들어온 배 한 척과 만나게 된다. 14. 이번 제주 여행에서 나는 일부러 유일반점을 찾아가 난자완스와 고추짬뽕을 주문했다. 음식을 먹다가 1950년 산지천의 풍경을 담은 해상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젓가락에 들린 난자완스 한 점과 저 낡은 목선 사이에 70년이 넘는 시간이 놓여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일반점

제주 제주시 광양7길 13

하늘호수속으로

존경합니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유익해서 역사공부하는 느낌으로 읽고 있어요😄

권오찬

@skylake123 하늘호수님, 까꿍~ ㅎㅎㅎ 저도 이참에 왜 섬, 제주에 청나라 화교들이 정착했었나를 추적하다가 제가 알고 있는 노포 대부분이 양낙산 일가로부터 뻗어나왔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는 여정이었습니다.

맛집개척자

재밌는 화교들의 제주정착기였습니다.^^

권오찬

@hjhrock 인스타에는 해상호의 그 뒷이야기도 올릴건데.. 산지천 복개공사 하면서 해상호를 복원했다가 2015년 철거했다네요. 당시 산지천에 이른 양낙산 일가는 땅 한평 없다보니 배에서 생활하며 어렵게 지냈다고 합니다.

Luscious.K

결국 유일반점이 시조네요 ㅎ 여기 난자완스는 전국 최고급이죠.

권오찬

@marious 현존 최고 업력의 제주 화상 노포는 덕성원이고 그 다음이 양낙산 사부가 개업했던 유일반점이지요. 난자완스는 확실히 클래식하더라구요, 요즘 레서피가 아니었어요. 인스타에 카드뉴스로 좀 더 자세하게 남겨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