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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e_chosun
5.0
13시간

가겐 이것이 해 뜨는 나라의 미식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일본의 고급 요리들을 꼽자면 스시, 덴푸라를 시작으로 카츠, 스키야키 등등 다양한 요리가 나올 것이다. 허나 개항 이전 일본의 상류층 음식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은 단연 가이세키이다. 육식금지령과 선종 불교의 문화가 결합하여 탄생한 이 정찬은, 검소한 듯 정갈하나 또한 눈부실 듯 화려한 독특한 문화로서 발전하였다. 상술한 일식의 갈래들 한국에서 대중화되는 와중에도 정통 가이세키는 그 비용과 이미지 때문인지 쉽게 다가오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몇몇 업장들을 필두로 하이엔드 일식 시장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학교 동기의 초대로 방문한 가겐. 가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제철 식재료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송이버섯을 사용해 정찬을 진행해 주었다. 보는 것도 음식이라는 듯 문을 열자마자 정갈하게 한소복 쌓여있는 송이가 반겨준다. #요리 밤을 곁들인 토란과 앙소스-은행새우완자와 송이 스이모노-우니와 캐비아를 곁들인 소바(시그니처)-가츠오와 광어사시미 순으로 이어지는 요리들. 원재료의 향과 맛을 잘 살려주는 은은한 간임에도 적절하게 딱 맞는것이 너무 좋았다. 서양의 뉘앙스 없이 동양적인 식재료들을 위주로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느낌. 특히 은행과 새우로 만든 완자는 러프한 끄넬 같은 것이 너무 완벽했다. #핫슨 제철 식재료를 멋스럽게 꾸며낸, 가이세키의 메인 요리인 핫슨. 홀의 불이 한순간 어두워지며 큼지막한 소쿠리에 등장한다. 초가을의 청단풍과 은행, 붉은 열매들이 정취를 물씬 뿜어낸다. 그 자태만큼이나 맛도 끝내주던. 알배기 은어 튀김-양파 폰즈를 입혀낸 문어조림-꽈리고추를 곁들인 바닷장어-무화과-송이 밥 순. 앞전의 요리와 마찬가지로 귀신같이 딱 맞는 간에 감칠맛 가득하게 익혀낸 재료들이니 맛이 없을수가. 특히 알이 꽉 찬 은어는 바삭하게 튀겨내어 은은한 오이향이 황홀했다. #요리 곁들인 와인의 출신지를 의심할 정도로 깨 향이 방에 가득 찰 정도로 즉석에서 절구질하여 무쳐 주신 전갱이를 맛볼 때 즈음. 솔잎에 은은히 구워낸 큼지막한 송이 하나와 송이 튀김이 등장한다. 솔잎을 많이 까는 이유를 알 정도로 황홀한 송이향이다. 은은한 흙향을 느끼며 쭉쭉 찢어먹으니 이 무슨 호사인가 싶었다. #식사 육식 금지령이 폐지된 곳이니 큼지막한 채끝살 두 덩이를 곁들인 스키야키. 앞전과는 다른 짭쪼름한 간이었는데, 덕분에 한우 기름과 잘 어울렸다. 이어 송이 솥밥과 밤 솥밥을 한 그릇씩 내어 주시는데, 송이향은 맡아도 맡아도 안 질리더라. 고슬고슬 잘 된 밥에 달콤하게 부서진 밤 앙금도 말해 뭐해. #디저트 흑당과 콩가루를 곁들인 고사리떡과 소테른을 넘어 전세계 스위트와인의 최고봉 중 하나인 디켐 18을 곁들인 소금 아이스크림까지. 특히 소금 아이스크림은 파사삭 부서지는 독특한 질감이라 와인과 너무 잘 어울린다. 높은 가격대로 인해 꽤나 무리한 감이 있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 서양의 3대 진미에 버금갈 만큼 귀중한 동양의 식재료를 유감없이 사용해 계절의 한복판을 선사하면서도 완벽한 간에 전혀 질리지 않았던. 가이세키라고는 료칸에서 접해본 약식이 대부분인지라 정확하게 판단하긴 어려웠지만, 퓨전의 터치보다는 전통적인 문법을 잘 지키는 곳이라 느껴졌다. 절별 식재료를 여쭤보니 봄은 나물과 조개, 여름은 이세에비, 가을은 송이, 겨울은 대게로 하신다고. 또한 부부 셰프님이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접객이 정말 너무나도 좋았는데, 셰프가 두분이니 유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즐거운 농담 겸 디스가 곁들여진 유머러스함은 식사 내내 웃음이 떠나지 못하게 했다. 홀린 듯 다음 예약을 잡을 수 밖에 없던 곳이었다. P.S: 예약은 전화로만 재방문의사: 5/5

가겐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19-1 2층

맛집개척자

멋지네요..가격도 만만치는 않을 듯한데 한번 경험해 보고 싶네여..ㅎㅎ

Luscious.K

자연송이 솥밥인가요? 제철의 호사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