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가니에르 "프렌치 수프" 코스 호텔, 특히 고급 호텔들에 있어 레스토랑은 그 평가의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사실 도시 어디든 발달된 웹 환경에서 쉽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요즈음에는 호텔에서 주는 서비스의 일환으로 레스토랑이 가지는 가치가 예전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 해도, 아직까지 해외 유수의 별들 단 레스토랑은 대부분 호텔에 딸려있는 것에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비교적 짧은 역사이지만, 한국 호텔의 레스토랑들도 나름 우리의 컬리너리 문화를 리드한다고 볼 수 있을 터. 오늘은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피에르가니에르에 단골 지인과 함께 방문했다. 서울을 둘러싼 사신들이 한눈에 보이는 중구의 35층. 때마침 개봉한 영화인 "프렌치 수프"를 오마주한 코스가 진행되고 있다 하여 주문했다. 프랑스의 다양한 가정식 요리들을 베이스로 쌓아올린 코스라고. 폴 로저 한잔과 함께 창밖을 보고 있으니 아뮤즈 부쉬와 함께 코스가 시작된다. #아뮤즈 부쉬 그 레스토랑의 색깔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입맛을 돋우는 코스인 아뮤즈 부쉬. 한국에선 은근 보기 힘든편이었으나 요즘에는 캐주얼한 곳에서도 많이 보이더라. 블루치즈와 하몽, 토마토 소르베같은 클래식한 친구들도 맛있었지만 민물장어에 캐비어, 푸아그라를 올린 자그마한 스낵이 베스트였다. 후술하겠지만 클래식한 조리법으로 살려낸 독특한 재료들의 조합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레스토랑이었는데, 아뮤즈도 그런 느낌이라 좋았다. #빵 바케트, 이탈리안 브레드, 과일이 들어간 호밀빵. 고향이 다른 세 빵이다. 셋 다 무난히 맛있었고 가염 이즈니 버터와도 잘 어울렸지만, 알다시피 이런거 많이 먹으면 업보가 찾아오니 조심 또 조심. #앙트레 살구 젤리를 곁들인 가리비, 갈치 육수를 졸여내어 렌틸콩과 올리브유를 곁들인 아이스크림(!!!), 콩테 치즈와 새콤한 비트 소스를 곁들인 삼배체 굴 세 가지 음식. 개성과 향이 강한 식재료들을 독특하게 조리해냈다. 산미나 오일의 향미가 불쾌할 수도 있는 향은 기가 막히게 커트하기에 재료들의 맛을 잘 즐길 수 있었다. 베스트는 듣도보도 못한 조리법의 갈치 아이스크림. 고대 로마의 갸룸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강렬한 감칠맛에 화려한 올리브유의 향미가 더해지는데,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볼오방 생선 요리에 해당하는 음식인 듯 한데, 패스츄리를 우물 모양으로 쌓아내여 소를 넣어 먹는 프랑스의 전통 가정식이라고. 민물 가재를 필두로 치킨 끄넬, 양송이, 전복이 들어간 구수한 클램차우더 느낌의 수프를 끼얹어 준다. 따뜻하고 고소한 크림 수프에 꼬들한 식감의 패스츄리가 푹 머금어지니 오늘의 베스트였다. 뭐 고급 식당에 맞게 커스텀된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프랑스 애들은 이런걸 가정식으로 먹는구나... #라비올리와 스위트브레드. 단호박 소스에 풍덩 빠진 푸아그라 라비올리와 가볍게 구워낸 스위트브레드. 사실 한국은 정치적인 문제로 생 푸아그라 수입이 불가능하기에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쉽기도 했다. 그에 대비해 클래식한 쥬 소스에 조리된 고소한 내장의 아부라가 잘 느껴지는 송아지 흉선은 기가 막히던. 한국에서는 송아지 도축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기에 성년이 되면 퇴화하는 흉선 요리를 맛보기 힘들긴 하지만, 옆나라만 가도 야키니쿠집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맛있는 부위이다. 많이 좀 팔아주세요... #포토푀 송아지 사태와 큼지막하게 깍둑썰기된 야채들이 잔뜩 들어간 스튜 요리.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 하에 있을때 이 스튜의 국물을 이용하여 발전한 요리가 쌀국수이기도 한 재미있는 음식. 가정식에 맞게 삼삼한 간에 푸근한 느낌으로 끓여내어주셨는데, 덕분인지 콩소메를 연상시키는 은은한 국물이 맛있었다. 문제는 이쯤 되면 배가 너무 불러서리... 사실 호텔이라는 장소의 한계에 육가공품이 수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부재료인 샤퀴테리의 퀄리티는 좀 아쉬웠다. ##디저트 프랑스 코스의 특징 중 하나는 밥을 먹고 디저트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수의 요리학교에서도 파티셰리 코스를 따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 코 큰 친구들이 디저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디저트 카트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나름 화려한 퍼포먼스들과 ㅎ 함께 배가 불러도 쭉쭉 들어가는 마법을 볼 수 있던. #배와 크림 가벼운 크림 밑에 잘게 썰어낸 배, 그리고 위에는 바삭한 튀일을 올렸다. 무난하게 맛있던 디저트. 다만 산미가 조금만 더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지만, 여기는 프랑스라고 생각해보자. #오믈레트 노르베지엔 스펀지 케이크에 아이스크림을 쌓아 오븐에 살짝 구워낸 디저트. 그랑마니에르로 불을 붙여 주시는데, 덕분인지 은은한 오렌지향이 좋았다. #프티푸 다행히 코스가 끝났음을, 터질 것 같은 배를 달래며 집으로 갈 수 있음을 알리는 프티 푸. 상큼한 산미의 베리 젤리가 특히 맛있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간 것이 아쉬워지던.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독특하고 산뜻한 디쉬들로 시작해 점차 무겁고 화려해지는 요리들이 35층의 낭만적인 풍경과 어우러지며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다만 요리 중간중간에 이런 식재료를 썼다면 더 완성도가 올라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한국의 다이닝들이 처한 필연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 아쉽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재미있고 훌륭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누벨 퀴진이나 모던스러운 정규 코스도 맛보고 싶던. 참고로 "프렌치 수프" 영화의 요리 자문을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가 직접 맡았다고 한다. P.S: 기대도 안 했는데 자동으로 할인되던 국민카드. 참고하길. #피에르가니에르 #프렌치맛집 #중구맛집 #파인다이닝 #먹스타그램 #프랑스음식 #먹스타 .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서울 중구 을지로 30 롯데호텔 35층
파비안 @Habyanak
다시는 없을 코스...정말 부럽습니다 :)
Tabe_chosun @star2068
@Habyanak 호텔은 호텔이더라구요… 돈값은 짱짱하게 해주던
Colin B @colinbeak
참 시의적절하네요.
Tabe_chosun @star2068
@colinbeak 맞아유 검수하신 분이 직접 레시피 만드시니 너무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