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팍 @cats1212

추천해요

10개월

“거 굴짬뽕 먹기 딱 좋은 날이구만.” 기차 밖의 설경은 대구에 가까워지자 점점 그 자취를 감췄다. 오른쪽엔 먹구름이 왼쪽엔 파랗던 대구 하늘 아래 드문드문 약한 눈발이 날렸다. 이상기후 탓이라는 겨울비가 끝난 한파의 시작점, 굴짬뽕을 먹기에 기막히게 적절했던 날. 말끔하게 새로 포장된 도로 위, 색바랜 홍등 아래 정직한 글씨체의 한자 ‘복해반점’이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연식이 상당해보이는 ‘수성골드고량주’ 광고 이미지 위의 주문식단 차림표(메뉴판)에는 가격을 정정하느라 덕지덕지 붙은 종이가 세월에 따른 물가의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가정집을 닮은 천장, 노르스름하다 못해 세월에 얼룩덜룩해진 LG냉장고 등 오래되고 친숙한 것들이 한데 뒤섞여 복해반점의 정겨운 분위기를 만든다. 굴짬뽕을 주문하고 5분이나 됐을까, 군침도는 냄새를 풍기는 아이보리 빛깔의 굴짬뽕이 놓인다. 첫입엔 담백칼칼하더니 먹을수록 간짜장을 닮은 감칠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통통한 굴은 입안 가득 우유같은 고소함을 더하고, 슬로 썬 고기는 바다의 향연에 육지의 풍미를 더한다. 배추는 아삭함과 더불어 국물에 채수의 시원함을 더한다. 믿을만한 친구의 추천이기도 했지만, 사실 복해반점은 들어온 순간부터 맛있는 곳이란 걸 확신할 수밖에 없다. 잔잔하게 깔리는 뽕짝 리듬 속에 섞여 들리는 중국 라디오 방송, 사장님들끼리 나누는 쉼없는 중국어 대화는 이곳이 제대로 된 화교 중국집임을 보여준다. 눈이 내리던 겨울날이어서 더없이 맛있었던 굴짬뽕. 한 그릇 거뜬히 비우고 복해반점을 나와 다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절로 이 한 마디가 나온다. “거 굴짬뽕 먹기 딱 좋은 날이구만.” ———————————————— 덧1. 굴짬뽕은 시즌메뉴. 기본은 하얀색이지만 요청하면 빨간 국물로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고춧가루없는 하얀국물의 시원칼칼함을 먼저 느껴보길 추천한다. 덧2. 안녕하세요, 주아팍입니다. 리뷰로는 실로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주채널을 블로그(‘라이프오브주아’ 많관부)로 옮기고 뽈레엔 글을 잘 쓰지 않고 있는데요^^;; ‘글쓰고 싶을 땐 페이스메이커가 돼줄 테니 언제든 이곳에 오라’는 권오찬님(@moya95)의 응원에 힘입어 리뷰를 남겨봅니다. 잦은 미식활동 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을 울려서 절로 글이 떠오르는 장소들 위주로 드물지만 리뷰를 남기려 합니다. 소환해주신 오찬님 그리고 친분있는 (전)홀릭분들, 새로운 분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복해반점

대구 중구 종로 22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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